휘트니 휴스턴의 Greatest Love of All 리뷰

휘트니 휴스턴의 Greatest Love of All

휘트니 휴스턴

휘트니 휴스턴 하면 90년대 최고의 디바 중 한 명이었습니다. 그녀는 한국인의 정서에도 맞는 소울 창법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아마 한국에서 그녀가 유명해진 것은 케빈 코스트너와 열연한 영화 보디가드에서 였을 것으로 기억합니다만, 그 때의 휘트니 휴스턴은 이미 정상의 기량을 갖춘 때였고 보디가드라는 영화 자체도 최고의 흑인 여가수와 백인 경호원의 사랑을 소재로 한 만큼 그녀의 일생에 영감을 받은 시나리오였습니다.

영화 자체가 휘트니 휴스턴에게 헌정한 영화였다 – 그렇게 봐도 무방한데요. 최고 인기를 달리던 케빈 코스트너라는 백인 남성 배우와 디바의 영광을 가진 흑인 여성 가수 휘트니 휴스턴의 사랑 이야기는 그야말로 센세이션 이었습니다.

휘트니 휴스턴의 Greatest Love of All
레전드 디바 휘트니 휴스턴

이 영화가 개봉한 1992년만 하더라도 미국내 흑인의 인권이라는게 썩 좋지는 않았습니다. 어떻게 보면 가장 대립이 심했던 인종이었던 백인 흑인간의 차원을 넘어선 예술이었으며 많은 사람들을 전율하게 한 것은 우연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1992년 4월은 LA 폭동이 일어나서 인종 갈등이 최고조에 달해서 레전드 한인들의 영상도 남아있으며 이 영화의 한국 개봉이 12월달이라 그런 사회적 맥락을 읽고 있던 한국인들에게도 충격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이 시기는 세계적으로 전쟁과 분쟁도 많았던 시기로 빌보드 팝스타들이 평화에 대한 메시지를 많이 내놓았던 영광의 나날들이기도 합니다. 마이클 잭슨은 1992년 11월 발표한 싱글 Heal the World는 전쟁으로 고통받는 세계에 대한 메시지를 전하기도 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기도 했습니다.

90년대 초반의 세계는 걸프전, 르완다 내전 등 여전히 피로 얼룩진 세계가 진행 중이었지만 동서로 분리된 독일이 통일하는 등 희망도 있었던 시대입니다. 세계에 가장 영향력이 컸던 미국의 팝스타들도 이런 메시지를 담아서 노래하던 시대입니다.

Greatest love of all 은 1985년에 발표한 휘트니 휴스턴의 세번째 빌보드 핫 100 1위 곡으로 조지 벤슨의 커버 곡입니다. 보디가드의 I will always love you 이전에 가장 중요한 곡이 Greatest love of all 입니다. 이 곡은 휘트니 휴스턴의 소울, 즉 영혼이 담겨있는 곡이기도 하지만 시대를 반영한 가사가 너무 아름다워서 평화와 반전 사상에 대한 교과서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단순히 미국이라는 지역이 아니라 전 세계에 전파될 수 있는 메시지를 가지고 있다는 면에서 높이 평가할 수 있습니다.

도입부의 가사를 보면

I believe the children are our future
나는 아이들이 우리의 미래임을 믿어

Teach them well and let them lead the way
그들을 잘 가르치고 그들의 길을 이끌도록 하고

Show them all the beauty they possess inside
그들이 안에 가진 모든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Give them a sense of pride
아이들에게 자존감 줘서

To make it easier
쉽게 하기 위해서

Let the children’s laughter remind us how we used to be
아이들의 웃음이 우리에게 우리의 어릴적 모습을 떠올리게

…하고 아이들의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평화는 아이들에게 있는 것이지요.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어떻게 대하냐에 따라서 세계의 미래가 달라진다는 것 입니다. 즉 힘있는 어른들이 자신들의 필요에 의해서 아이들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을 배려하는 것을 이야기 하는 것 입니다.

그런 어른들은 무슨 생각을 하는가? 다음 가사에 나와있습니다.

I decided long ago never to walk in anyone’s shadows
나는 오래전에 다른 사람의 그림자 안으로 걸어가지 않도록 결심했어

If I fail, if I succeed
내가 실패하거나, 내가 성공하더라도

At least I’ll live as I believe
최소한 나는 내가 믿는데로 살 것이야

No matter what they take from me
그들이 내게서 가져가는 것이 있다 해도

They can’t take away my dignity
그들은 나의 존엄성을 가져갈 수 없어

Because the greatest love of all is happening to me
왜냐하면 모든 가장 큰 사랑이 나에게 일어났어

I found the greatest love of all inside of me
내 안에서 최고의 사랑을 찾았어

The greatest love of all is easy to achieve
최고의 사랑은 얻기 쉬워

Learning to love yourself
너를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는 거야

It is the greatest love of all
그것이 최고의 사랑이야

휘트니 휴스턴의 Greatest Love of All
휘트니 휴스턴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최고의 사랑이라는 것 이것은 성인이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자신이 각성하는 이야기 입니다. 그들을 사랑해주면서 결국 최고의 사랑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설파하는 것이지요 가사도 그렇지만 휘트니 휴스턴의 전달력이 워낙 뛰어나서 가사를 잘 몰라도 그 진정성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런 시대적인 흐름은 당시 POP의 일관성이 있었습니다. 머라이어 캐리는 1993년 10월에 Hero라는 곡을 발매하는데 잘 들어보면 Hero(영웅)는 당신의 내면에 있는 것이다. 이미 우리는 그런 자질을 가지고 있는 개인들이라는 것을 일깨운 곡입니다.

흑인 디바에 휘트니 휴스턴이었다면 백인 디바는 머라이어 캐리였습니다. 지금 들으면 그냥 옛날 감성이겠지만 이런 일관적인 가사가 나온 것은 당시 세계의 정세나 사회 문제라던지 깊은 메시지가 깔려있던 것 입니다.

머라이어 캐리 Hero 소울류의 특징이 교회 성가대의 찬양처럼 매우 깊고 깊게 들어와야 합니다. 단 한곡을 부르더라도 말라가는 영혼을 울릴 수 있을 정도로 아름답고 풍부해야 합니다. 당시 인종적인 갈등 양상으로 봤을 때 휘트니 휴스턴은 머라이어 캐리보다 더 특별했습니다. 여기서 약간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데, 아 이건 상당하게 갈릴 수 있지요. 지금도 구글 검색에 whitney houston mariah carey 라고 치면 Who has a better voice Whitney and Mariah 라고 나올 정도니까 이런 것은 판정이 어렵습니다.

다만 휘트니 휴스턴이 2012년 불의의 사고로 일찍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살아있는 머라이어 캐리 보다 조금 더 좋은 평가를 받고 있을 수 있다 – (예술가는 사후 더 좋은 평가를 받는다는 원리에 의하여) 는 느낌은 있지만 우열을 가리기는 어렵지 않을까 싶습니다.

R&B 소울은 흑인이 원류이기 때문에 휘트니에게 더 좋은 평가를 줄 수도 있겠지요. 이것은 그 사람의 인종, 가치관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절대적이진 않다고 봅니다. 하지만 휘트니가 전성기 시절 대단했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 같고 인종적으로 차별이 존재하던 시절의 사람이라서 더 돋보일 수 있습니다.

흑인들은 불과 1950년대까지도 합법적으로 백인들에게 버스 자리를 양보해야 할 정도로 미국의 인권 상황은 최악이었습니다. 물론 그 후에 차별법이 철폐되기는 하지만 오랜 관행은 그 후로도 흑인들을 오랫동안 괴롭혔습니다. 많이 사라졌지만 그 잔재는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백인 경찰이 흑인 조지 플로이드를 체포과정에서 살해한 사건으로 전국적인 시위가 일어난 것이 불과 2020년 즉 2년 전 입니다. 70년 후에도 흑인에 대한 인권은 존중받고 있지 못한 것 입니다. black lives matter(흑인의 생명은 중요하다) 라는 운동은 불과 2년 전에 인스타에서 퍼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배경을 길게 설명하는 것은 1990년대 초반 휘트니 휴스턴의 사회문화적 가치가 얼마나 높았는가 – 단지 대중 예술가로써의 가치가 아니라 미국, 세계적 인권에서의 공감에서 역대급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보디가드는 그런 것을 활용한 헌정 시나리오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당시 백인 최고의 배우인 케빈 코스트너가 흑인 여가수를 위해 몸을 바쳐 자신이 대신 총을 맞는 다는 것은 그야말로 시대의 상상력을 깨버리는 시나리오 설정이었습니다.

그것의 영향인가 케빈 코스트너는 후에 한인 여성과 결혼하기도 하고 (케서방) 최근에는 일본인 여성과 결혼하는 등 그만의 가치관과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을 내려놓고 화합한다는 상징성을 갖습니다.

*이 노래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구절은 다음과 같습니다.

At least I’ll live as I believe
최소한 나는 내가 믿는데로 살 것이야

No matter what they take from me
그들이 내게서 가져가는 것이 있다 해도

They can’t take away my dignity
그들은 나의 존엄성을 가져갈 수 없어

90년대 초 전성기 그녀의 라이브 영상을 보면 확신에 찬 모습에 전율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녀의 디바로써 전성기는 2000년까지 지속되지만 90년대 최악의 지구촌 상황속에 그녀의 노래는 너무나 빛이 났습니다. (상업적으로는 머라이어 캐리가 가장 좋았다, 하지만 이 포스팅은 휘트니 휴스턴을 위한 것이니까…)

휘트니 휴스턴 8-90년대는 R&B 소울의 전성기 시절이기도 하지만 디바로 기억나는 가수는 많지 않습니다. 이것도 약간 휘트니 휴스턴이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느끼는 감정이기도 한데 더 이상 그녀의 노래를 들을 수 없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머라이어 캐리의 Hero도 좋았지만 흑인 여성인 휘트니 휴스턴이 부르는 Greatest Love of All 이 더 좋았던 것 같습니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감상이지만 가수는 그런 사상을 전할 수 있는 매개체이기 때문에 본인의 태생 이런 것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90년대는 아직 한국인들이 미국의 문화, 그 중에서 백인 문화에 열등감이 깊은 시대였습니다. 1992년 2월에 미국의 백인 아이돌 그룹 뉴키즈온더블럭의 내한공연에서 공연당일 팬들의 무질서로 한국의 여고생 1명이 사망 70여명이 중경상을 내는 등 지금 생각하면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매일같이 벌어지던 날들이었습니다.

그 때 한국 정부는 이 공연을 주최한 음반사 대표를 구속하는 등 사회적인 문제가 많았고 그렇다고 시민의식은 있었느냐? 그렇지 않았습니다. 가장 강렬한 기억 중에 하나는 뉴키즈온더블록 멤버 중에 공연을 끝나고 버스를 타고 떠날 때 멤버중에 코를 풀고 버린 휴지를 팬들이 서로 자기가 갖겠다고 아수라장이 되거나 그런 일들이 있던 시기였습니다. 엄청난 열등감이었습니다.

그런 한국인들이 이제는 BTS, 블랙핑크 등 아이돌 그룹을 만들어 전세계가 열광하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떡잎부터 다른 나라긴 한 것 같습니다. (결과적으로 좋은 것인가?)

휘트니 휴스턴 시대로 돌아와서 보면 당시 팝의 황제는 마이클 잭슨이었습니다. 그도 흑인이었지요. 90년대 한국에서 기억에 남는 미국의 스타라면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 NBA 농구 황제 마이클 조단이 있었는데요. 거기에 디바 가수로써 흑인인 휘트니 휴스턴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흑인 여성으로써는 한국에까지 이름을 알린 몇 안되는 스타입니다.

휘트니가 한국에서 상업적 히트를 친 곡은 머라이어 캐리에 비해 조금 수가 적지만 그 상징성이나 임팩트 등에서는 훨씬 뛰어난 부분이 있다고 봅니다.

그녀가 사망한 시기는 공교롭게도 휘트니 휴스턴과 마이클 잭슨이 비슷한 시기에 갔습니다. 그때 제가 미국에 살 때였는데 마이클 잭슨이 사망하고 몇년 뒤에 휘트니 휴스턴이 사망했습니다. 그 당시 미국의 언론이 발칵 뒤집혔는데 둘다 약물 처방 등의 이유였던 걸로 보도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걸 보면서 오랜 차별의 역사를 가졌던 흑인 중에 그런 엄청난 스타가 나오면 그 삶이 결코 쉽지 않겠구나, 우리 말로 바꾸면 팔자가 쎄구나 –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너무나 아름다웠던 노래를 해주던 휘트니 휴스턴, 마이클 잭슨과 엮을 필요까진 없지만 그래도 같은 흑인 인종이니까 또 흑인 아티스트들이 음악적 재능에는 엄청나고 존경했기 때문에 잊기가 어렵습니다.

약간 잡설이지만 90년대 돌풍을 일으키고 사라진 서태지와 아이들도 흑인 음악을 기초(copy?) 했습니다. 지금도 쇼미더 머니나 이런 힙합 문화를 보면 한국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흑인들과 잘 맞는 부분이 있다 – 그렇게 생각합니다.

뭐 갖다 붙이는 거긴 하지만 한국의 유튜브에서 가장 성공한 박준형의 와썹맨도 컨셉이 LA 흑인 이니까요. (박준형의 영어는 LA 흑인 스타일이다) 휘트니는 갔지만 음악은 영원합니다.

90년대 휘트니 휴스턴의 확신에 넘치는 그 노래, 너무나 사랑스럽습니다. 그녀의 노래를 몇십년은 더 들을 것 같습니다.

휘트니 휴스턴 유튜브 뮤비 링크(아래)

Whitney Houston – Greatest Love Of All (Official 4K Video) –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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