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습의 샤아
역습의 샤아는 우주세기 건담의 전성기에 극장판으로 제작된 애니메이션입니다. 연대기로 보면 퍼스트건담의 0079 제타건담의 0087 더블제타의 0088 이후 0093 네오지온 항쟁을 다루고 있습니다.
연방의 아무로 대위와 네오지온의 총수 샤아는 소년 시절부터 평생을 반대편에서 대립해온 라이벌이었습니다. 모빌슈츠 전투에서 건담에 탑승한 아무로가 먼저 뉴타입으로 각성하고 연방의 하얀 악마라는 칭호를 얻을정도로 항상 샤아를 압도했었으나 샤아 역시 아무로와의 전투를 통해서 뉴타입으로 성장합니다.
퍼스트건담인 0079에서 건담시리즈 여성 파일럿 중에 최고의 뉴타입이라고 일컺는 지온의 라라아슨의 기체 엘메스는 샤아를 구하기 위해 아무로에게 격파당하고 그녀는 즉사합니다. 라라아슨은 샤아와 아무로 두 뉴타입 사이에 묘한 삼각관계에 놓여있었고 아무로에 대한 열등감 때문이었는지 샤아는 라라아슨에게 정신적으로 의존했습니다. 그런 그녀가 전투중 건담의 빔샤벨에 사망하는 사건으로 두 사람은 평생의 숙적이 됩니다.
샤아와 아무로 퍼스트 건담 역습의 샤아에서 샤아는 아무로에게 라라아슨은 나의 어머니가 될 수도 있는 여성이었다고 아무로에게 화를 내기도 합니다. 라라아슨은 태초의 여성성을 간직한 대지의 여신 같은 신성을 부여한 캐릭터였습니다. (토미노 감독의 의도였다고 함) 아무로 역시 그런 라라아슨과 만나서 뉴타입으로써의 강한 정신적 유대관계를 맺고 있었습니다.
라라아슨의 죽음에 아무로에게 책임을 돌리는 샤아에게 오히려 아무로는 그런 순수한 라라아슨을 자신의 야욕을 위한 전쟁에 끌어들여서 비극을 만든 것은 샤아라고 비난합니다. 이는 설득력있는 비난으로 비슷한 재능을 가진 퀘스 파라야를 엘메스와 비슷한 모빌아머 알파 아질의 파일럿으로 만들어서 이용만 했습니다. 결국 퀘스는 아무로 레이의 부관이자 애인인 첸이 쏜 라이플에 사망합니다. 여기서 또 퀘스와 정신적 유대를 맺고 있던 또 한명의 뉴타입 소년 하사웨이에게 첸은 살해당합니다. (끓임없이 막장으로 몰고가버림;;;)
역습의 샤아에서 아무로와 샤아는 끝장을 볼때까지 대립하고 피터지게 싸웁니다. 외부에서 봤을때는 단지 연방과 네오지온 서로 다른 진영의 이념에 따라 싸우는 것으로 보이겠지만 실상 그 둘이 그렇게 치열하게 부딪힌 것은 라라아슨의 사망과 그로인해 절망하여 상대방에게 품게된 분노 그리고 샤아의 열등감이 내적인 동기였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말려든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되는지 인과관계를 들여다 보는 것도 관전의 포인트입니다.
0079 부터의 대립
역습의 샤아도 이전 시리즈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다면 난해한 작품으로 보일 수도 있는데요. 연대기적으로 보면 0079 퍼스트 건담에서 1년전쟁을 통해서 숙명의 라이벌이 되고 0087 제타건담에서 샤아는 정체를 숨기고 에우고에 가세한 크와트로 바지나 대위 신분으로 에우고의 지상 협력조직 카라바의 아무로 레이와 재회합니다. 시간이 지나서 나이가 들고 에우고의 대위로 위장한 샤아였지만 아무로는 그를 보는 순간 뉴타입의 직감으로 샤아임을 깨달았습니다. 샤아도 뉴타입으로써 자각합니다. 0087에서는 크와트로 바지나로써 아무로 레이보다 더 많은 활약을 합니다.
어떻게 보면 지온 건국가의 아들이자 에이스 파일럿이었던 샤아가 지구연방군의 특별 조직인 에우고에 들어간 것 부터가 넌센스였는데 결국 다카르에서 에우고 대표 연설을 하면서 최종적으로 지구인을 교화하려는 자신의 본심을 깨닫게 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액시즈 세력인 하만 칸과의 마지막 전투에서 그의 기체 백식은 대파하고 죽은줄 알았으나 0093 홀연히 네오지온 총수로 나타나서 우주요새 액시즈를 지구에 떨어뜨리는 작전을 실시합니다. 그리고 이제 모두 아는 역사지만… 이를 막으려는 아무로 대위와 함께 싸우다가 싸이코 프레임의 알수없는 빛에 휘말려서 오로라가 되버립니다.
두 사람의 생존설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지만 토미노 요시유키 감독은 이미 십년이 넘게 이끌어왔던 아무로와 샤아의 이야기를 마무리하려고 했다고 합니다. 결국 둘중 하나가 죽어야 끝나는데 지구를 구하고 두 사람도 죽는다는 결론입니다. 이것이 정사가 되버립니다. 물론 평행우주라는게 있어서 얼마든지 두 사람이 살아있다는 이야기도 만들 수 있겠지만 적어도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정사에 그런 시도는 없었습니다.
역습의 샤아 – 최종 결전
88년도면 지금으로 부터 30년도 더 전의 이야기지만 퍼스트 건담의 79년도 부터 계산하면 이미 10년 가까이 끌고온 시리즈였고 85년의 Z건담, 86년의 ZZ건담까지 빠른 속도로 후속작을 내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Z건담, ZZ건담의 시리즈는 연대기뿐만 아니라 캐릭터들간 연관 관계도 극도로 복잡해져 있었습니다. 게다가 Z건담이 주인공인 카미유 비단의 정신붕괴 등 극도로 어두운 세계관이었으면 ZZ건담은 주된 시청자가 저연령층이 되버리는 등 시리즈의 업앤다운이 너무 심해져서 기존 건담팬들의 불만이 쌓여갔고 다음 작을 내기 위해서는 전작 캐릭터들과의 관계를 정리해야 하는데 점점 복잡해지기만 하는 어려움에 봉착합니다.
예를 들어 Z건담에서 아무로가 카라바에 소속되는데 ZZ건담에서는 뭐하고 있는지 설명을 해줘야 합니다. 설명이 충분하지 못하면 기존팬들의 항의가 예상되고 이는 고인물들을 심화시키고 신규팬을 만드는데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토미노 감독도 그렇고 건담 프렌차이즈의 확장을 위해서는 정리를 해야할 강한 필요성이 있었습니다. 결국 퍼스트 건담부터 우주세기를 대표하는 최종 보스인 아무로와 샤아의 대립을 영원히 종결시키기로 결정합니다.
토미노 스타일이니까 결국 둘다 죽어야 끝나는 것이지요. 문제는 두 사람의 마지막 순간이 어떻게 끝나느냐의 문제였습니다. 이 싸움의 결말은 잘 알려져 있지만 모빌슈트 전투 능력으로써는 아무로가 샤아를 압도했습니다.
연방의 ‘하얀 악마’는 언제나 샤아보다 뛰어난 모습을 보여줬죠. 사람들은 전투에서 만큼은 아무로가 샤아를 이길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흑백논리로 보면 연방은 아군, 네오지온은 적군 이렇게 보이니까요. 하지만 Z건담의 크와트로 바지나에서 본 것 처럼 샤아는 계속 변합니다.
아무로가 언제나 옳은 말과 행동을 하는 주인공이라면 샤아는 어쩔 수 없는 환경과 원하지 않았던 선택의 연속에서 자신도 변하고 그로인해 주변인들을 변하게 하는 또다른 주인공입니다. 샤아의 아무로에 대한 열등감은 라이벌과의 결판이라는 집착을 낳았습니다.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불안정한 정신상태의 강화인간 규네이를 비뚤어지게 만들어서 자신의 실력을 과신하여 뉴건담에 무모한 도전을 하다가 죽게 됩니다. 또 라라아슨의 닮은 꼴인 퀘스 파라야를 전장에 끌어들이고 달콤한 거짓말로 자신을 위해 싸우다가 죽도록 방치합니다.
어린 퀘스가 갈구한 것은 단순한 사춘기적 호기심에 불과했습니다. 그녀가 원한 것은 아버지에 대한 원망을 극복하게 해줄 샤아의 관심이었지만 결국 그녀는 자신의 아버지를 살해한 후 정신이 붕괴되고 규네이와 마찬가지로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다가 마지막에 정신차리고 같은 사춘기 나이의 소년 하사웨이를 보호하다가 죽게됩니다. 하사웨이는 이에 분노하여 아무로의 애인인 첸을 죽입니다. (이때 부터 테러의 싹수가 보임)
참고로 섬광의 하사웨이의 세계관에서는 하사웨이가 퀘스를 죽인 것으로 나옵니다. (소설) 첸을 죽인 것이면 아군을 살해한 것이므로 군법회의 총살감이죠. (하사웨이는 화이트 베이스 함장 브라이트 노아의 아들이다)
샤아의 과도한 망상과 라이벌인 아무로에 대한 집착이 불러온 파국은 끝을 알 수 없는 블랙홀처럼 후대에까지 많은 캐릭터들의 인생을 날려버립니다. 따지고 보면 퀘스 파라야에 대해서는 거의 미성년자 착취 수준으로 대하는데 이 캐릭터 자체도 좀 별로 라라아슨의 하위 호환 같은 느낌이라 팬들에게 지지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또 당시 시대상을 감안하면 샤아에게 비난이 많지는 않았습니다.
퀘스를 철저히 이용(착취)하는 가운데 정작 샤아 본인은 성숙한 커리어 우먼인 나나이 미겔에게 의존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이런 샤아의 파렴치한 모습은 지금 시대 기준으로는 개봉이 힘들었을 듯 합니다. 허나 샤아에게는 핑계라고 하지만 항상 자신을 정당화할 이유가 있었고 이는 0079, 0087, 0088 건담의 연대기를 이해한 사람들에게는 납득이 되었습니다.
이 시대 극화의 시나리오는 아직 선과악의 이분법적 논리를 벗어난 경우가 별로 없었습니다. 샤아의 인생 전반에 걸친 전쟁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살아가는 모습에서 이 캐릭터는 아군인지 적군인지 헷갈리게 만들고 후에 지온군 시각이 반영된 애니메이션과 게임이 인기를 얻게하는 계기가 됩니다. 스페이스 노이드라는 설정 자체도 지구에서 낮은 계층을 우주로 강제 이민 시킨 느낌이 강합니다. 즉 지온 공화국은 약자들이 시작한 서민적인 국가였다는 점입니다.
퍼스트건담이 탄생한 79년이 냉전시대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토미노 감독이 당시 세계의 시대상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딱히 연방을 미국과 EU로 대표되는 자본주의 사회와 지온을 구소련 등 공산주의 국가를 대입하기는 다소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만 전혀 무관하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토미노 감독 뿐 아니라 더블오 건담 처럼 후대의 건담에는 작품의 세계관에 시대상을 적극 반영함으로써 국제 사회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쉽게 공감할 수 있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약간 다른 이야기지만… 최근에 빈센조를 보고 있는데 좋은 극화는 시대상을 반영함으로써 당시 사람들의 공감력을 크게 이끌어 내서 후대에 봤을 때도 그 의미를 기억할 수 있게 합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도 한국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만든 영화지만 전 세계인의 공감을 얻었습니다. 이는 사회 계층간 부조리를 영화에서 구축된 세계관을 통해 고발하는 측면도 있습니다. 따라서 시사나 역사에 관심이 많다면 건담과 같은 서사극의 의미와 감동을 더 크게 느낄 수 있습니다.
30년이 지난 지금와서 생각하면 토미노 감독은 역습의 샤아에서 모든 것을 종결시킬 생각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 아쉬움에 건담 평행세계인 섬광의 하사웨이도 집필했는지 모릅니다. (단 토미노 감독이 전문 소설가는 아니라서 퀄리티는 좀 별로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 후 토미노 감독은 91년작 건담 F91에서 UC 0123 로 역습의 샤아의 UC 0093에서 30년 흘려 보내고 또 다시 TV시리즈 V건담의 시대를 UC 0153 로 30년 흘려 보내면서 기존 아무로와 샤아의 대립에서는 해방시키는 시도를 했습니다. 아무래도 30년씩 두번이나 지나면 이제 사람들도 다 늙어 죽고 강산도 변하겠죠.
그러나 워낙 아무로와 샤아 두사람의 존재감이 컸기 때문에 당시에는 또 호불호가 많이 갈렸고 후대에 와서 재평가 받기도 했습니다. 우주세기 건담 시리즈에는 0083이나 08소대, 0080 등 다양한 정사가 있고 또 건담 오리진 등 지금도 계속 시리즈가 추가되고 있습니다. 건담 시드, 더블오 건담 등 고인물이 아닌 새로운 세대를 위한 건담이 등장하면서 한동안 우주세기는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졌다가 최근에 UC 0096 유니콘 건담이 대히트를 치면서 섬광의 하사웨이까지 세계관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우주세기 건담은 한 두편의 영화만으로 이해하기가 난해한 작품입니다. 그래서 새로운 팬층을 확보하는데는 시간이 걸리지만 한번 팬이 되면 시리즈의 여러 작품을 보면서 매니아가 되기 때문에 제작사와 팬들 서로에게 윈윈 관계입니다. 우주세기 건담 관련 새로운 애니메이션이 나오면 보고 게임이 나오면 사고 프라모델도 삽니다. 하나의 애니만으로는 수지 타산이 안나오지만 전체 건담 프렌차이즈 사업은 망하지 않게 됩니다.
역습의 샤아는 유튜브 gundaminfo 에 예전에 공식적으로 업로드 되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또 지금 보니까 내려가있습니다. 아마 저작권 때문에 넷플릭스 등 OTT를 옮겨 다니는 것 같구요. 4K 블루레이로도 판매하고 있는데 가격이 비싸기 때문에 일반인이 사기엔 쉽지 않을 겁니다. 넷플릭스에는 6월달에 공개되는 줄 알았는데 아직 공개가 안되었습니다.
특이한 것은 아래 넷플릭스 타이틀 화면에 뉴건담이 아니라 리가지와 사자비의 전투를 넣었네요. 아무로가 초기에 리가지를 타긴 하는데 뉴건담이 완성이 되지 않아서 샤아는 설렁설렁 봐주면서 싸웁니다. 샤아가 이때 기체성능으로 아무로를 격파할 수도 있었는데 그렇게 하면 샤아의 자존심이 회복되지 않기 때문에 결국 뉴건담을 아무로에게 넘겨주고 아무로에게 쳐발립니다;;;
포스터를 보고 느낀점은 넷플릭스는 미국회사다 보니까 역습의 샤아의 진정한 의미는 모르는게 아닌가 알았다면 리가지가 타이틀에 나올 수 없을 텐데…
어쨋든 왜 늦어지는지는 모르겠지만 넷플릭스에 공개되면 다시 한번 봐야할 듯 합니다. 넷플릭스 만의 특전이나 편집이 들어갈지는 모르겠네요. 워낙 오래된 영화니까요.